반야산 관촉사
2008. 08..01.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968년(광종 19)에 혜명(慧明)이 창건하였고, 법당은 1386년(우왕 12)에 건립하였으며, 1581년(선조 14) 백지(白只)가 1674년(현종 15)에는 지능(知能)이 중수(重修)하였다.
옛날 중국의 지안(智安)이라는 명승(名僧)이 이 절에 세워진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은진미륵)을 보고 “아아, 마치 촛불을 보는 것같이 미륵이 빛난다” 하면서 예배하였다 하여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7월 초하루와 백중 기도 날이라 이른 아침인데도 보살님들이 준비하는 모습이 바쁘게 느껴진다.
기도하기 위해 오시는 보살님들과 무언가 열심히 기도에 열중한 보살님들이 많이 눈에 뜨였다.
일주문
천왕문
대웅보전
윤장대
명부전
배례석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었다. |
석등
평면이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고려식으로,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 새겨진 굵직한 연꽃무늬가 두터움을 드러내고 있다. 가운데받침은 각이없는 굵고 둥그런 기둥으로 세웠는데, 위아래 양끝에는 두줄기의 띠를 두르고, 중간에는 세줄기의 띠를 둘렀다. 특히 중간의 세 줄기 중에서 가장 굵게 두른 가운데 띠에는 8송이의 꽃을 조각하여 곱게 장식하였다. 2층으로 이루어진 화사석은 1층에 4개의 기둥을 세워 지붕돌을 받치도록 하였는데, 기둥이 빈약한 반면 창은 터무니없이 널찍하다. 각 층의 지붕들은 처마가 가볍게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네 귀퉁이에는 큼직한 꽃 조각이 서 있어 부드러운 조화를 이룬다. 꼭대기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큼직한 꽃봉오리모양의 장식을 두었는데, 조각이 두터워서 인지 무거워 보인다.
전체적으로 뒤에 서 있는 석불 못지않게 힘차 보이나, 화사석의 네 기둥이 가늘어 균형이 깨지고, 받침의 가운데기둥이 너무 굵고 각이 없어 그 효과가 줄어든 감이 있다. 뒤의 석불 즉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과 함께 고려 광종 19년(968)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남한에서는 화엄사각황전 앞석등(국보 제12호) 다음으로 거대한 규모를 보여준다.
은진미륵..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불상으로 흔히 ‘은진미륵’이라고 불리며 높이가 18m에 이르는데, 당시 충청도에서 유행하던 고려시대의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머리에는 원통형의 높은 관(冠)을 쓰고 있고, 그 위에는 이중의 네모난 갓 모양으로 보개(寶蓋)가 표현되었는데, 모서리에 청동으로 만든 풍경이 달려 있다. 체구에 비하여 얼굴이 큰 편이며, 옆으로 긴 눈, 넓은 코, 꽉 다문 입 등에서 토속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옷주름선이 간략화되어 단조롭다. 불상의 몸이 거대한 돌을 원통형으로 깎아 만든 느낌을 주며, 대형화된 신체에 비해 조각수법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광종 19년(968)에 만든 관음보살상이라 전해지는데, 연대 고찰을 위해 참고할 만하다. 이 보살상은 경기·충청일대에서 특징적으로 조성되었던 토착성이 강한 불상으로, 새로운 지방적 미의식을 나타내고 있어 크게 주목된다.
삼성각
삼성각에게 내려다본 석등과 석탑..
석문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79호로 지정되었다.
관촉사 경내에 들어가려면 통과해야 하는 문으로 크기는 바깥너비 194cm, 안너비 137cm, 바깥높이 196cm이며 석문 자체의 크기는 높이 1.8m, 너비 2.0m이다. 다른 사찰에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문으로 입구의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윗면 천장에 5개의 장대석을 얹음으로써 4각형의 석문을 이루고 있다.
돌기둥은 너비 40㎝의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축조연대에 관한 고증이나 기록은 없으나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사찰이라는 도장에 들어가기 위한 문이라는 뜻에서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구전에 의하면 관촉사를 창건하였을 때 참배객이 너무 많이 몰려 이를 막기 위해 담장을 쌓고 사방에 문을 내었는데, 그중 동문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이 석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