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산 석남사
2008. 08. 09.
서운산(瑞雲山, 547m)은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솔가한 한남금북정맥이 서북쪽으로 휘돌아 흐르다 안성의 칠장산에서 한남정맥을 갈래친 다음 남서쪽으로 꺾어져 내리는 초입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산줄기는 계속 남쪽으로 내달려 서천을 지나 금강 하구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서운산은 높고 우람하지는 않지만 산세가 부드럽고 웬만해선 물이 마르지 않는 계곡을 품고 있어서 산의 동서 양쪽에 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쪽 산자락에 앉아 있는 절이 남사당의 근거지로 알려진 청룡사이고, 동쪽 기슭의 절이 바로 석남사입니다.
석남사는 신라 문무왕 20년(680)에 담화 스님이 초창했습니다. 고려 광종 때인 970년에 혜리 국사가, 원종 때인 1265년에 태원 스님이 중창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태종 7년(1407)에 자복사(資福寺·국가의 복을 기원하기 위해 지정한 사찰)로 지정되어 이 지역의 으뜸 사찰이 되었으나, 우리나라 대부분 절이 그랬듯이 임진왜란 때 잿더미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이후 인조 27년(1649)부터 10여 년간 해원 선사가 영산전을 중수하는 등 절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합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석남사는 피서객 차들의 무질서한 주차로 인해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려가는 길이 걱정되기는 했으나 다행히도 생각보다는 시간이 약간 늦은 시간이라 올라오는 차가 적어서 고생을 덜하였습니다.
주차장에서 보이는 금광루
석남사 현판
대웅전쪽에서 보이는 금광루
목어
다른 곳의 목어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고 채색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무를 자연스럽게 물고기 형태로 만들어서 �으로 장식해 놓은 모습입니다. 일반적인 목어는 배 부분에 홈이 파여 있어 나무채로 두드리게 되어 있으나 이 목어는 홈도 아직 파여 있지 않은 모습입니다.
금광루에서 보이는 대웅전
석남사는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을 따라서 크게 세 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금강루의 마루에 잇닿은 첫 번째 단에는 좌우로 요사로 쓰이는 중심당과 종무소, 한 단을 더 오르면 오른쪽으로 영산전, 뒤편으로 도중당, 그리고 맨 위의 단에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종무소
석남사 대웅전은 영산전에서 또 한번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만날 수 있습니다
본래 석남사에서 대웅전의 자리는 이곳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러 번의 중수 과정을 거쳐 현재의 자리에 대웅전이 들어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단촐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법당 안에는 목조불상에 금분을 입힌 삼존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대웅전
삼존불 위에 있는 닫집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중층 구조를 하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대웅전 오르는 계단 아래 영산전 앞과 그 옆의 공터에 한 기씩 두 기의 오층석탑이 있습니다. 두 탑은 모양새가 같고 높이 또한 2.3m정도의 크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탑의 부재가 온전히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며 영산전 건너편에 있는 이 오층석탑은 기단부가 없어져서 시멘트로 탑을 고정시켜 놓은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 오른쪽에 영산전이 있다.
영산전
보물 제823호인 영산전은 조선 중기의 특징을 지닌 건물로, 암막새기와에 ‘영조 1년(1725)에 번와(飜瓦·기와를 바꾸는 일)했다’는 명문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볼 때 절대연대는 최소한 17세기로 올려 볼 수 있겠습니다. 자연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기둥은 물론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하나씩 공포가 있는 다포식 건물입니다.
석남사 사적비
석벽감실에 안치된 불상
도중당
샘터
요사채 뒷편에 연못
대웅전에서 내려다본 금광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