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찰

함라산 숭림사

Pine Tree(소나무) 2008. 12. 23. 19:52

 

2008.  12.  20.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숭림사(崇林寺)는 신라 경덕왕(742~764)때에 진표율사가 금산사와 함께 창건했다는 설이 있 으나, 익산지」에 보면 고려 충목왕 원년(1345년) 을유년에 행여(行如)선사가 중건했다는 시록과 명문기와가 현재 보관중이며 익산 지역의 대표사찰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때 「보광전」만 남고 불타버렸으며 이후 1697년(숙종 23년) 우화루와 영 원전을 새로 창건하고 이후 나한전을 지었으며, 1987년에 주지로 부임한 지광스님께서 범종 각, 산신각, 일주문 요사인 안심당과 해탈교, 세심교를 신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숭림사」라는 이름의 연원은 남천축의 달마대사가 중국의 숭산 소림사에서 면벽9년의 좌선 을 행한 고사를 기리는 뜻에서 숭산(崇山)의 숭(崇)과 소림사 (少林寺)의 림 (林)자를 따서 선종사찰인 「숭림사」라 하였다고 한다.

 

 일주문

 

 숭림사 현판이 있는 우화루

 이 현판은 이배원의 장남 하당(荷堂 ) 이집천(李集阡)이 썼다. 

 

 보광전

 

1592년(선조 25) 임란 때 보광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탔다. 1697년(숙종 23)과 1819년(순조 19), 1892년(고종 29) 각각 전각을 중수하였다.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보광전은 17세기 이전에 지은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임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건물 옆면에는 공포를 배치하지 않았다. 건물 안쪽은 보 끝에 용머리를 조각해 놓았고, 기둥 윗부분에 설치된 건축 부재들은 각각 연꽃, 용의 몸, 용 앞발이 여의주를 쥐고 있는 모양으로 장식하고 있다. 법식과 기법이 특징인 조선 후기 건축물로 건축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로 주목받는 문화재이다.


보광전의 주존불인 목조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은 전북 유형문화재 제 188호로 광해 5년(1613) 조성된 불상으로 전체 높이 110cm, 전체적으로 균형감과 안정감이 있으면서 중후한 느낌을 준다. 특히 옷주름의 표현이 사실적이다,    

 

 

 비로자나 불이 주불인 보광전이지만 오래된 석가여래좌상이 한 구 있다. 1613년에서 1614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불상은 원래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함께 있는 삼세불이었으나 1986년에 도난당하여 지금은 석가불만 남은 상태이다.


숭림사재산대장(崇林寺財産臺帳)』「보광전석가모니불상복장기문(寶光殿釋迦牟尼佛像腹藏記文)」에 의하면 1613년(광해군 5) 겨울 초파일에 조성하기 시작하여 다음 해인 1614년 봄 초파일에 완성했으며, 왕과 왕비, 왕세자의 만수무강을 위해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불상의 복장에서 나온 기록에 의하면 시주자와 당시 주지등 조성불사에 참여했던 스님들의 직급과 명칭이 나열되어 있다.

이 불상은 매우 큰 규모로 안정감이 있고 중후한 느낌을 주는데 17세기 불상의 전형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전체높이 110cm로 나무로 만들어 졌으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이다.

 

 

 

   5층석탑

  오층석탑은 보광전 앞마당인 중정 동쪽에 치우쳐 있다.

  단층기단으로 기단부에 다양한 수인을 취한 사여래(四如來)가 시문되어 있으며, 그 위로 탑신과

  옥개, 상륜부를 갖추고 있다.

 

 

 우화루

우화루는 보광전으로 진입하는 정문으로, 숭림사의 중심구역 전면에 위치하고 있다. 우화루는 본래 신라 때 세웠다고 하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의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집으로 『우화루중수기』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석덕 스님이 창건한 후, 1819년, 1855년, 1964년, 1992년에 각각 중건되었다고 전한다.


건물은 밖에서 보면 짧은 동자주를 받친 이층의 누각형식이지만, 안쪽은 중정과 높이가 같은 단층으로 개방되어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이는 숭림사의 대지가 협소하고 경사가 완만한 편이어서 전면 누각을 높게 만들어 누하로 진입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후면이 다른 누각형식과 진입방식은 조선중기에 중창된 대부분의 산지가람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방식으로, 누각형식이 갖는 외관의 장대함과 실질적인 쓰임새를 중시한 당시 건축미감을 느낄 수 있다. 

 

 정혜원

이 건물은 스님들이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는데 보광전 마당의 서쪽에 있다.

정혜원은 보광전 마당 서쪽에 위치한 요사채로, 『정혜원상량기문(定慧院上梁記文)』에 따르면 1591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44년(인조 22)에 중건한 것이라 한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건물로, 평면구성은 부엌 쪽에 한칸반을 덧붙여 퇴칸을 구성한 특이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영원전 

 

목조 지상보살 외 25권속. 전북 유형문화재 제189호 숭림사 영원전에 모셔져 있는 지장보살상과 시왕 및 그 권속들로, 중앙의 목조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 무독귀왕 및 시왕, 판관, 사자, 동자, 인왕 등 모두 25구의 상들이 배치되어 있다.


『숭림사재산목록대장(崇林寺財産目錄臺帳)』에 의하면 1634년(인조 12)에 조성되었으며, 모두 전북 옥구에 있던 보천사(普天寺)에서 1925년에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이 상들이 봉안된 영원전 역시 성불암의 칠성각으로 사용되던 것을 1926년에 이건한 것으로, 보천사의 불상들을 봉안하기 위해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재료는 중앙의 지장보살은 목조상이나 지장권속은 소조상으로 조선후기 불상 조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1697년(숙종 23)에 서립된 영원전은 숭림사 북쪽 화산기슭에 있던 성불암(成佛庵)의 칠성각을 1926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온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자연석 두벌대의 기단에 막돌초석을 얹고 원기둥을 사용하여 다포를 올린 모습이다.

건물의 어칸에는 서연민(徐延珉)이 쓴 ‘영원전’ 편액과 1960년대에 쓴

‘영원전건축연대’ 현판이 걸려 있으며, 건물 외부에는 차분하고 단정한 황색, 청색의 단청이 장엄되어 있다.

영원전이라는 전각이름은 명부전, 지장전, 시왕전의 별칭이며, 조상의 천도를 위한 근본도량으로서 다른 사찰의 명부전과 같이 목조의 지장보살상을 주불로 봉안하고 있다.

 

 옛부터 지장보살이 방광을 하면 그 지역에 길조가 생겼으며, 그로 인해 숭림사 지장보살은 지역주민들의 극진한 보호를 받았다.

 

일제강점기의 어느 날, 평소 불상을 탐낸 일본인들에 의해 지장보살상이 수탈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불상을 훔친 일본인들은 숭림사에서 가장 가까운 군산항을 통해 불상을 일본으로 옮기려 시도하였다. 그러나 불상을 실은 배가 출발하려고만 하면 태풍이 불어 항해가 중단되거나, 선장이 피를 토하고 죽거나, 선원들 사이에 칼부림이 일어 배가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일들을 겪은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며 불상을 군산항 보급창에 내팽개친 채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후 시간이 흘러 광복이 되었고, 어느날 한 선원이 보급창에 들어갔다가 구석에서 금빛이 환히 방광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금칠이 다 벗겨진 채 시커먼 옻칠만 남아 있는 지장보살상이 있었고, 그 몸에서는 금빛의 서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선원은 지장보살의 복장기록과 옛 이야기들을 수소문하여 본래 모셔져 있던 숭림사를 찾게 되어 영원전에 봉안하게 되었다."

 

 나한전 

1929년에 신축되었다. 이곳의 나한상은 군산시 서수면의 보천사에 있던 것이다.

 

 

 산신각

 

 범종각

 

 범종

 

 

 부도 

부도전은 일주문을 지나 세심교를 건너기 바로 전 오른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총 4기의 부도로서 모두 조선후기 및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기대와 지붕을 갖춘 보주형이며, 비석지붕을 올려놓은 것도 있고 제대로 짝을 갖춘 것이 드물어 주목할 만한 특징은 없다.


2기의 부도에는 명문과 조성연대가 새겨져 있는데, 하나는 무애당 선사 곧 황성렬스님의 부도이며, 또 하나는 유심당 일훈 대사의 부도이다. 명문이 없는 부도 2기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일명부도들로, 하나는 『강희이십삼년갑자입』이라는 절대연대가 새겨져 있어 1684년(숙종 10)에 세워진 것을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높은 대좌 위에 구형의 탑신과 사각당형의 옥개석을 올린 모습이며 1684년에 조성된 것과 흡사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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