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9, 8, 5
날씨 : 맑음
도피안사를 뒤로하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심원사를 향한다. 보개산 심원사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로리 72번지에
소재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좁은 골목길을 마주오는 차가 없기를 바라며 들어가면 비로소 심원사가 눈에 들어온다.
심원사는 우리나라 제일의 지장기도도량 본존으로 알려진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그 가피와 영험을 얻고자 하는 수많은
불자들이 오늘도 줄을 잇고 있는 곳이다. 황금멧돼지와 사냥꾼ㆍ앉은뱅이 이야기ㆍ뱀과 까마귀의 인과 등 수많은 설화를
간직한 지장보살의 이야기는 심원사 지장의 영험과 그 가피의 영이(靈異)함을 보여준다.
황금멧돼지로 화하여 사냥꾼 형제를 살생의 죄업에서 벗어나 출가하게 한 창건설화, 장님과 앉은뱅이의 지극한 대종불사
(大鐘佛事) 시주에 감응하여 그들에게 눈과 다리를 줌으로써 견불령(見佛嶺)이라는 고개와 대광리(大光里)라는 마을이름을
남기게 한 설화, 전 재산을 사찰불사에 내놓은 머슴 박씨를 사또로 환생하게 한 설화 등 심원사 지장보살과 부처님을 둘러싼
무수히 많은 영험설화가 전하고 있다고 한다.
신라시대인 647년(진덕여왕 원년)에 영원조사(靈源祖師)가 처음 세운 후 광복 전까지 대가람의 위용을 자랑하며
중부 내륙의 불교성지로 널리 알려졌던 심원사. 그곳의 불단에서 자비의 미소로 중생을 내려다보고 있는 지장보살은
개금(改金)이나 장식을 거부하며 도금을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금칠이 벗겨져 석불의모습을 하고 있다 한다.
심원사 전경
좌측의 누각형태로 보이는 건물이 지장원불전이며 아래층을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다.
우측에 보이는 황토방 형태의 요사채는 기도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지장원불전 뒤쪽으로 명주전과 대웅전 삼성각이 있고
지장원불전 좌측으로는 화산경원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에 새로 불사한 듯한 대웅전
대웅전 삼존불
신중탱
명주전
심원사 명주전 내부의 석조 지장보살좌상
명주전 계단 아래의 아귀발우
화산경원
근대 경학연구의 중심도량인 화산경원은 1935년 백일기도 중에 지장보살의 현현을 목격한 독립운동가 한규설(韓圭卨)의 부인 박선심화보살과 그녀의 동생 박대선화보살의 희사로 설립된 근대 불교교육연구원이며 오늘날 큰스님 중 이 화산경원 출신이
많아 당시 화산경원의 위상을 입증해주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그 명맥만을 유지한 채 신도들의 요사 및 공양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지장원불전이 건립되기 이전 대형법회 때
설법전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삼성각
삼성각 내부
< 심원사지 >
6· 25 전쟁으로 주전각인 천불전만 남긴 채 모두 소실된 심원사는 전쟁이 끝난 후 천불전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석대암 지장보살상을 봉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의 절터에는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38호인 부도 12기와 아미타불입상ㆍ사적비ㆍ공적비만이 옛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사역은 동서 140m, 남북 80m 등 약 3천600여 평의 규모로 발굴결과 총 5동의 건물지가 확인되었으며, 문헌에 누락된 명부전의 위치와 7구 이상의 조선시대 토불좌상과 입상, 후령통(복장을 넣는 통), 동경 등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위치하고 있었으며, 천불전이 동편에 자리잡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목불의 흔적과 하층의 대좌적심, 연화대좌 등이 발견되어 폐사시기의 천불전 자리에 원래 대웅전 건물이 위치했다는 것도 밝혀진 바 있다.
사세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250만평을 되찾아, 2002년 4월부터 경기도청ㆍ연천군청과 함께 23억원을 투입하여 심원사지 복원불사를 전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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