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04.
베이징[北京]에 있는 청나라 때의 황실 정원.
베이징 서쪽 교외의 이허위안 동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원명원,장춘원(長春園), 기춘원(綺春園 : 나중에 만춘원으로 바뀜) 3원을 통틀어 일컫는다. 면적은 320ha이며 호수가 많은 땅에 지어져 수면이 35%를 차지한다. 1709년 강희제(康熙帝)가 네 번째 아들 윤진에게 하사한 별장이었으나 윤진이 옹정제(雍正帝)로 즉위하자 1725년 황궁의 정원으로 조성하였다. 그뒤 건륭제(乾隆帝)가 바로크식 건축양식을 더하여 원명원을 크게 넓혔고 장춘원과 기춘원을 새로 지었다.
장춘원 북쪽에는 프랑스 로코코 양식의 영향을 받은 유럽식 건물인 서양루(西洋樓)를 세웠다. 3원 가운데 뒤쪽에 자리잡은 원명원은 호수 주위에 있는 9개의 섬에 조성하였고 구주(九州), 청연(淸宴)을 비롯한 9동의 부속건물이 있다. 호수 푸하이[福海]에는 신선이 살고 있다는 세 섬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州)를 뜻하는 작은 섬 3개를 조성하여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였다. 원명원은 1709년부터 1860년까지 황제가 기거하며 정무를 처리하던 곳이었으나,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때 영국·프랑스 연합군에 의하여 불에 타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원명원 입구
중국은 많은 중국사람들로 인하여 사람을 피하면서 사진을 찍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상대가 사진을 찍고있는 상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원명원에 들어가면 이와 같이 3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모두 돌아보기는 너무 힘들고
제일 왼쪽 상단에 보이는 하늘색 표시로 된 구역으로 가면 로마 양식등 건축물을 볼수 있다.
용등불축제로 인하여 많은 준비를 한것 같다.
밤에 갔었더라면 굉장히 화려했을것 같다.
원명원의 자랑은 연꽃이다.여름에는 이 연꽃이 온 호수를 뒤덮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이런 연꽃의 종류는 많은데 원명원은 올해 260여종을 식재해 놨다고 한다.
용의 모습
너무 길어서 카메라에 다 넣을수가 없었다.
올해 8월 우리나라에서도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에서 차이나 훼스티벌을 개최했었는데 그곳의 모습과 거의 흡사했다.
용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용의 모습이 더 섬세하고 화려한것 같다.
원명원을 돌아보는데 미니버스 타는데 편도 1인당 5원 (한국돈 650원)이다.
제2차 아편전쟁중 영불 연합군의 침략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 서양식 유적이 남아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원명원은 원래 중국최대의 황가원림으로 이화원보다 몇배 더 컸으며, 그 안에는 중국고대의 모든 원림의 양식이 집중되어 있으며 서구식 건축군도 있어 '정원 중의 으뜸'이라 일컬어 졌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세계적인 명원은 1860년과 1900년에 북경을 침략한 영.프 연합군과 8국 연합군에 의해 모조리 불타 버리고 폐허만이 남았다. 근년에 원래의 건축 유적을 보존한 것 외에도, 정부에서는 원내(園內)의 풍경을 보수하여 관광객들에게 정식으로 개방하였다. 이 중요한 유적은 중국 내외의 손님들이 유람하는 장소 일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중국을 침략한 역사적 증거물이기도 하다.
폐허가 된 원명원에 몇 해 전, 중국에서 지난날을 잊지말자며 비를 따로 새겨놓은 것을 보게 되었다. 서양 및 일본과의 굴욕적인 조약 전문을 모두 새겨 놓았는데, 실로 놀라웠다. 북경대 학생들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오리엔테이션을 이곳에서 했다고 한다.
원명원은 정말 화려한 공원이었을텐데, 그런 이유로 끝까지 복원을 하지 않을 계획인 것 같다
황화진의 정자.
미로.. 나오는 길이 쉬울것 같지만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는거...그러나 성급하지않게 나오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
성질 급한사람은 담을 넘어 가는 사람도 있다.
중국의 국경절을 맞이하여 원명원을 마지막으로 관광을 마쳤다.
엄마를 관광시키기 위하여 네이버로 검색하고 지하철 노선표를 인쇄하여 하나하나 관광시켜준 우리 예쁜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그어느 관광 가이드보다 훌륭했다.
지금은 중국에 간지 2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내년 1년동안의 어학 연수를 마치고 집에 올때 좋은 수확을 얻어 올수 있다는
확신을 한다.
2달 전보다 중국어 실력이 많이 향상된것을 보며, 역시 인간은 환경에 적응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엄마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을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엄마를 관광시켜주는 딸이 대견했다.
5일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중국에 혼자 남겨두는 딸의 걱정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될거같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이 아주 무겁지는 않다.
즐거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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