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찰

조계산 선암사

Pine Tree(소나무) 2008. 4. 28. 20:56

 

2008.  04.   26.

 

정혜사를 떠나 순천에 위치한  선암사를 향해서 떠난다.  계속 이동하면서 사찰을 다니니 약간은 허기가 진다.

길에 만두와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어 차를 세우고 요기를 한다.  만두 모양이 아주 앙증맞다.

배가 고파서인지 정말 맛있었다.  오늘 일정은 선암사를 둘러 보는것으로 마무리 해야 할것 같다.

 

 선암사 올라가는길

 

 

 

 

 

 

 

 

 

 

 

 일주문

 

조계산 선암사는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에 있으며, 백제 성왕(聖王) 7년(529年)에 아도화상이 지금의 조계산 중턱에 암자를 짓고 청량산 비로암이라 하였다.

신라 경문왕(景文王) 원년(861年)에 도선국사 (道詵國師)가 이곳에 대가람을 일으켜 선암사(仙巖寺)라 이름하고 호남의 3암사중 수찰(首刹)을 삼아 선풍(禪風)을 크게 진작시켰다.

순천 선암사는 고려불교의 여러사상이 선과 교의 승풍으로 융합되어 많은 선승을 배출한 태고종 본산으로 이름나 있다. 지금부터 900년전 대각국사 의천스님이 중국의 천태의 교법을 전수받아 천태종을 개창하였고, 당시 청량산을 조계산이라 개칭했으며 임제선풍의 대쪽같은 승풍을 고고하게 지켜온 청정도장이자 천년고찰로써 우리나라 불교문화연구에 있어 송광사와 쌍벽을 이룬 사찰이다.

승선교를 비롯한 신라때 이중기단 양식의 "동.서 삼층석탑"과 화엄종 대가의 초상화인 "대각국사 진영" 10세기경 8각원당형 양식의 "동.북부도"등 보물 8점과 장엄하고 화려한 대웅전, 팔상전, 원통전, 금동향로, 일주문등 지방문화재 11점을 포함 총 19점의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범종각

 

범종각은 불전사물의 하나인 범종을 모셔놓는 곳으로서 다른 이름으로는 종각이라고도 한다. 범종아침과 저녁예불 때 모든 중생의 극락왕생을 비는 의미로 친다.
화강암의 초석위에 원형기둥을 사용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우진각지붕으로 겹처마를 하고 있는 단촐한 건물이다..

천장은 우물천장이고 공포는 소로와 첨자로 결구하여 주심포 형식을 하나 살미 부분이 익공형식을 하여 주심포에 익공형식이 가미된 모습이다

 

 

 

 샘터

 

 

 설선당

사찰의 중심축에서 왼쪽에 위치한다. 옛날에는 만일염불을 했던 염불원이 있었던 건물이며, 현재는 행자들의 교육과 생활을 하는 곳이다. 낮은 기단에 덤벙주초를 놓아 원형기둥을 세우고 초익공 형식을 한 단출한 건물이다. 맞배지붕이 이어져 □자를 이루고 중앙의 조그마한 마당을 향해 건물이 집중 배치되어 있다.

단층 건물로 보이지만 내부는 중층이다. 1층에는 스님들이 기거하고 2층은 수장(收藏) 공간으로 활용한다. 내부는 조그마한 중정을 향하고 있어 개방적이고 외부로는 문이 별로 없어 다소 패쇄적인 성향을 갖는다. 설선당 상량문에 의하면 1824년에 대웅전을 복원하고 이듬해인 1825년에 심검당과 함께 중건했음을 적고 있다.

 

 

 

 

 대웅전

 

 

 만세루

 

만세루는 선암사의 강당 및 포행하는 공간에 해당하는 건물로서 수많은 학승들이 여기서 강학을 하였던 건물이다.
1824년에 대웅전과 함께 해붕,눌암스님 등이 중창한 건물로 익공형의 정면 5칸, 측면 2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인 목조건물이다.

원래 초기 가람의 배치형식에서 강당이 금당(金堂), 즉 대웅전의 뒤편에 있어야 할 위치이나 조선시대의 가람에서는 강당이 대웅전 앞에 위치한다.
일반적으로 전통사찰에서는 주축선상에 누문(樓門)을 두고 이 누문의 밑으로 진입하여 대웅전 앞 중정(中庭)에 이르게 하나 선암사에서는 누하(樓下)로 진입하지 않고 누(樓)의 좌우로 돌아가게 하였다.

 지장전

 

대웅전 바로 우측에 직각 방향으로 대웅전을 향하여 서 있다. 지장보살을 비롯한 명부의 십대왕이 모셔져 있다. 이 건물은 순조 23년(1823)에 불타버린 1년 뒤에 해붕, 눌암, 익종 3대사가 중건하였다. 사찰내의 전각 중에 가장 화려한 조각상들이 모셔져 있으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겹처마를 하고 있는 건물이다.

 

 

 팔상전

석가모니의 전생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를 압축하여 여덟 장면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팔상도라 한다. 이 그림들을 모시고 석가여래를 기리는 불전이 팔상전이다. 선암사의 팔상전에는 아미타부처님을 주존 으로 모시고 뒤에 화엄탱화가 있고 양 측면에는 팔상도가 봉안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33조사도가 모셔져 있다.

대부분의 팔상전에는 영산회상도가 등장하는데 선암사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화엄탱화가 등장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불조전과 나란히 대웅전 뒤에 한단 높게 축대를 쌓아 위치하였다. 1761년에 상월과 서악스님등에 의하여 중창된 팔상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기와집 이다. 낮은 기단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둥근기둥을 세웠는데 측면의 두 기둥만이 네모기둥이다. 기둥위에 주두를 놓고 첨차를 짜 올렸으며 기둥사이의 창방위에는 귀면(鬼面)의 화반을 놓아 도리 밑의 장혀를 받치고 있다. 기둥 윗부분은 주두를 얹고 첨차와 소로로 외 1출목의 공포형식을 취하나 살미부분이 익공형식을 하고 있어 이를 두 형식의 혼합된 모습이다.

 

 

원통전 

 

 

 불조전

불조전에는 대개 사찰의 개창자나 중창자, 중수자 및 역대 유명한 선조사(禪祖師)스님들의 진영이 모셔진다. 그러나 선암사의 불조전에는 과거 7불과 미래의 53불 즉 60분의 부처님을 모신 전각인데 1761년에 상월과 서악스님에 의하여 중창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목조 팔작기와집으로 주심포 형식에 익공 형식이 가미된 건물이다.

 

 

 조사당

조사당은 중국에 선을 전한 달마대사를 시작으로 육조혜능 마조도일 등의 중국의 5대선사의 진영과 태고종의 종조인 태고보우국사 그리고 선암사의 선을 널리 알린 침굉현번선사진영을 모신 전각이다. 자연석으로 된 기단은 외벌대로 되어있다.

 

 

 대웅전 경내

 

대웅전은 조선시대 정유재란(1597)으로 불에 타 없어져 현종 1년(1660)에 새로 지었다. 그 후 영조 42년(1766)에 다시 불탄 것을 순조 24년(1824)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은 선암사의 중심 법당으로, 그 앞에 만세루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앞마당에는 삼층석탑(보물 제395호)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삼성각

 

삼성각은 불교의 신이 아닌 한국 사회에 토착화하면서 고유의 토속신앙이 불교와 합쳐져 생긴 신앙 형태이다. 전각은 보통 사찰 뒤쪽에 자리하며, 칠성,독성,산신을 모시는 전각이다. 대웅전 북서쪽에 있는 조그맣고 간결한 건물이다. 어느 사찰의 삼성각과 마찬가지로 정면 3칸, 측면 2칸인 맞배지붕의 기와집이다.

중앙에 칠성단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독성단산신단이 형성되었다

 

 

 

 

 

 

 

 

 

 선암사의 승선교

 

 

 

 

 

 

 

 

 

 

 

 

 

 

 

 

 

 

 해우소

 

대변소는 一자형 건물의 북측 중앙에 출입용으로 맞배지붕을 붙여 T자형을 이루고 있다. 단순한 사찰의 화장실이지만 형태에서는 퍽이나 흥미롭다. 보통 사람들은 사찰의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로 알려져 있으나 근래에 와서 붙여진 이름이고, 원래는 정랑(淨廊), 청측, 뒷간이라고 부른다.

전체적으로 목재를 사용하여 일견 불편할 것 같으면서도 고풍이 있고, 지면에서 높아 악취를 멀리 하였으며 통풍이 잘되도록 전후에 살창을 두어 화장실로서의 기능에 충실한 지혜로움을 보이고 있다. 특히 바닥의 짜임이 우수하고 남녀의 구분이나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도록 2열로 배치한 점이 흥미롭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분미물은 퇴비로 사용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자연친화적인 화장실이다. 이 건물은 정유재란때 초토화 되었으나 불에 타지 않은 몇몇 건물 중의 하나로 전한다.

 

 

 하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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