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07. 31.
일주문
‘萬壽山無量寺’라고 쓰여져 있는 일주문은 오랜 세월을 견뎌온 듯 꿋꿋한 자세로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가공한 흔적은 잘 보이지 않고, 원목을 그대로 이용하여 기둥을 세워 놓은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꾸밈없는 솔직하고 자연 그대로를 활용 할 줄 아는 조상들의 여유. 그런 모습을 이 무량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작은 계곡이 이어지고 맑은 물이 미끄러지기에 더욱더 청아한 무량사는 일주문과 천왕문과의 거리가 조금 되었다. 무량사는 큰 대찰이라고 하기보다도 중찰(中刹) 정도였는데, 넓은 공간을 이용함으로서 큼지막한 마당의 느낌이 들었다.
당간지주
천왕문의 옆 편에는 커다란 당간지주가 있었는데, 고려 초기의 것으로서 나무기둥을 대는 부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천왕문
범종각
종무소
극락전
석등과 오층탑과 극락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면서 점차 높아지도록 배치되어 있어 마치 하늘나라 극락세계로 가는 돌계단을 오르는듯하다.
극락전은 2층으로 된 커다란 건물이다. 여느 절의 금당에 비해서도 작은 규모가 아닌데, 2층이라는 특이한 구조 때문에 더욱더 유명한 건물이다. 배흘림기둥과 하늘로 치켜 올라 갈 듯한 팔작지붕의 처마 선은 바람에 휘날릴 듯 하다. 지붕 위에는 잡초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이는 문화재의 훼손으로 갈 수도 있으나, 자연과 어우러지기 위하여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것같다.
무량사는 신라 말에 범일이 세워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으나 자세한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신라말 고승 무염대사가 일시 머물렀고, 고려시대에 크게 다시 지었으며, 김시습이 이 절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치않는 2층 불전으로 무량사의 중심 건물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이지만 내부에서는 아래·위층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트여 있다.
아래층 평면은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기둥 사이를 나누어 놓았는데 기둥은 매우 높은 것을 사용하였다.
위층은 아래층에 세운 높은기둥이 그대로 연장되어 4면의 벽면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는 그 얼마되지 않는 낮은 벽면에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창문을 설치했었는데 지금은 나무판 벽으로 막아놓았다.
아미타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는 이 불전은 조선 중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낸 불교 건축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수한 건물이다.
석등
오층석탑
석등의 바로 앞에는 커다란 석탑이 있는데 5층 석탑이다. 뭉툭하고 두터우면서도 후기 신라의 석탑과는 달리 균형보다 여유로운 모습이 보인다. 무량사의 여유는 헤아리지 않는다는 절의 이름과 통하는 것같다. 이곳의 모든 건물이나 유물들은 그러한 여유를 가지고 있다. 이 무량사 오층석탑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여유를 지니고 있었다. 장중한 느낌의 오층석탑은 백제의 여유롭고 넓은 모습이 눈에 띄인다.
명부전
탑의 우측에는 명부전이 있었다. 명부전엔 시왕(十王)이 모셔져 있었는데, 조선후기의 것으로 명부전의 구성원(?)들이 모두 모여 있어서 그 가치가 크다고 한다. 입구엔 두 명의 역사(力士)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서 맞이하고 있는데, 강한 힘을 가진 역사나 저승을 다스리는 시왕도, 그들의 중심에서 부드럽고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는 지장보살보단 아래라는 점에서 역시 주먹보다 강한 것은 부드러운 여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산전
영산전 안에는 석가여래와 오백나한이 모셔져 있는데, 오백나한 때문인지 천불전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천불전
천불전은 최근에 지어진 것 같았다. 천불과 함께 가운데에는 천수관음(千手觀音)이 있었다. 그동안 알고 들었던 천수관음을 목도하게 되었는데, 천수관음에게 수염이 나 있다는 점이 조금 의아하였다. 원래 그런 건가? 아님 그냥 이렇게 해 놓은 것인가?
그 중에서 한 건물을 들어가니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중앙을 바라보니 어디에서 많이 본 그림이 걸려있었다. 바로 그 유명한 김시습 영정으로서 따로 건물을 만들어 이 김시습의 영정만을 모시고 있던 것이었다. 김시습의 내면세계가 잘 보이는 이 작품은 찌푸린 인상과 꽉 다문 입술, 한 시대를 풍미하였으나 조용히 살 수밖에 없었던 그의 울울한 심정을 그대로 살린 그림인것 같다.
산신각
산신각은 역시 절의 뒤편에 있었다. 산신각으로 가는 길에는 작은 계곡이 하나 흐르고 있었는데, 이 계곡이 무량사를 전체적으로 내려오는 풍수적인 배치를 지니고 있는 듯 하다.
산신각에는 흥미로운 그림이 하나 걸려있었다. 바로 머리가 높게 솟아있는 남두노인으로서 장수를 기원한다는 그 남극성의 남두노인을 이렇게 만날 수 있었다.
부도
세조의 왕위 찬탈에 비분강개하고 읽던 책 다 불태운 그가 무량사로 들어온 건 기호·영동·영남지방 돌아다니다가 기력이 쇠잔해진 말년. 그는 1493년 5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유해를 절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했고, 3년 뒤 무량사 스님들이 가매장한 시신을 파보았더니 얼굴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고 한다. 이를 본 스님들은 필시 매월당이 부처가 되었다고 놀라면서 화장하여 부도를 세웠다. 그의 부도는 무량사 일주문 개울 건너에 있는 무진암 근처 부도밭에 있다. 왜정 때 폭풍으로 부도밭 곁의 거목이 쓰러졌을 때 부도가 무너졌는데, 내부에서 사리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무진암
김시습부도 30m에 비구니 스님들이 계시는 무진암이 있다.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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