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사찰

작봉산 쌍계사

Pine Tree(소나무) 2008. 8. 10. 22:40

 

2008.  08.  01.

 

쌍계사는 무문(無門)의 절이다.
화재로 소실된 후 다시 세우지 못했기 때문 이다. 전설이 깃든 하마비를 지나면 산자락의 낙엽송 숲 속에 부도와 중건비가 모여 있다. 

쌍계사는 작봉산의 북쪽 기슭에 북향으로 앉아 있다. 절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계곡이 내려온다. 그래서 쌍계사라고 했다. 처음에는 ‘백암(白庵)’이라고 불렀으나, 절에 화재가 잦아서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쌍계사 부도

 

절 입구에 위치한 부도전에는 모두 9기의 부도가 일렬로 늘어서 있다. 부도의 형식은 크게 석종(石鐘)형과 소위 ‘알부도’라 부르는 구형(球形) 탑신을 지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석종형 부도는 모두 형식이 대동소이한데, 네모난 지대석 위에 상하로 복련과 앙련을 포개놓은 대좌부를 놓고, 그 위에 종형의 탑신을 올려놓은 형식이다. 탑신 상부에는 연화 띠를 돌린 것이 대부분이며 그 위에는 연봉형의 상륜을 돌기시켰다. 탑신을 구형(球形)으로 만든 부도 역시 형식이 대동소이하다.

방형의 지대석 위에 상하로 복련과 앙련을 포개놓았으며, 그 위에 구형의 탑신을 올린 위에 옥개석을 올려놓은 형식이다. 세부적인 조각의 내용은 약간 씩 차이가 있는데, 특히 옥개석에 용을 조각해 놓은 것이 있어 주목된다. 이들 부도 중 일부는 탑신에 명문을 새긴 것이 있는데, 대부분 풍화가 심해 글씨를 알아볼 수 없고, 석종형의 취봉당혜찬대사지도(翠峰堂慧粲大師之屠) 정도가 명문 전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모두 조선시대에 조성된 부도로 생각된다.

 

봉황루

 문 없는 문을 들어서면 눈높이의 석축이 있고 돌계단이 나 있다. 돌계단을 올라서면 대웅전과 봉황루가 넓은 중정(中庭)을 만들고 있다.

 

 

 

 

작봉산 쌍계사는 고려  광종 때 혜명대사가 창건으로 추정되며  대단히 번성하였으나 쇠락하고 고려말 다시 중건하였다고 전해온다. 중건은 당시 대문장가 행촌 이암 선생이 발원하고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연기문(緣起文)을 적었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후 병란으로 건물이 불탄 후 중건을 하고, 재차 불탔던 것을 조선 영조15년(1739년)에 이르러 현재의 대웅전을 비롯한 중건불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관촉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쌍계사가 있는데   초하루와 백중 기도가 있어 바쁘게 움직이는  관촉사와는 달리 한적하였다.

이곳 저곳을 구경하는데 어디서 소리지르는 것을 듣게 된다.

어느 보살님이 사찰 사진을 찍는다고 소리친다.  정말 어이가 없다.

대웅전에 들어가서 절하는 곳까지 쫓아 다니면서 감시(?)한다.  다른 사찰과 달리 이곳은 사진을 찍지 못한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다른 사찰에 비해 인색하다는 생각도 들고 다른 사찰은 오늘 바쁜 일정에 준비하기 위해 바쁜데

왜이리도 한산한지도 약간은 이해가 된다.

그 보살님 덕(?)에 대웅전 사진은 한장도 찍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대웅전

 

쌍계사 절터는 제석천이 잡아 주었다고 전한다. 전설에 따르면 보물 408호인 대웅전은 제석천의 아들이 강림해 각지의 백성들이 보내온 여러 가지 진귀한 나무들로 지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웅전 오른쪽 3번째 기둥은 칡 줄기로 만들었다는 전설까지 있다. 비틀어진 근육질을 보아 칡 기둥은 서어나무가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은 단층 팔작지붕의 당당한 규모와 함께 천의무봉한 자연미를 자랑한다. 가지만 툭툭 쳐서 세운 듯한 자연목 기둥에서부터 다듬지 않은 덤벙주초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인공(人工)을 절제했다. 후불벽을 세운 기둥까지도 구불구불한 자연목 그대로이다.

 

 국화꽃살문

국화는 은일화 또는 옹초라고도 하며 고상함과 품위 장수를 상징한다.

 

 

 

 샘터

 

 명부전

명부전은 대웅전 앞마당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의 규모와 형식 및 1932년의 쌍계싸재중수기(雙溪寺再重修記)에 명부전의 중수(重修)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조선시대 후기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리통 3간, 양통 1간의 장방형 평면으로 정면에만 3간에 걸쳐 각 두 짝의 여닫이문을 두었고, 양 측면과 후면은 모두 벽으로 만든 감실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측면과 후면의 벽은 중방 하부에 화방벽을 설치하고 있음이 특징이다. 기단은 최근에 다시 조성한 것으로 막돌을 이용한 외벌대이다.

초석은 막돌초석이며, 기둥은 원형으로 후면의 일부 기둥은 휜 부재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기둥 위에는 도리방향으로만 창방을 돌렸으며, 공포는 이익공식으로 초익공은 앙서, 이익공은 수서형으로 초각하였다. 행공(行工)은 교두형이다. 지붕은 홑처마의 맞배지붕으로 양 측면 박공에는 풍판을 달았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고미반자 형식의 평천장이다. 정면 어간에는 ‘冥府殿’이라 쓴 현판을 달았는데, 현판은 건물 규모에 비해 큰 편에 속한다.

 

 산신각

칠성탱과 산신탱 및 독성탱을 봉안한 건물로 정면 어간 상부에 횡으로 길게 '七星閣兼山神閣'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대웅전 서쪽 마당의 남쪽 끝에 북향해 위치하고 있다. 1932년의 쌍계사재중수기에 산신각을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미루어 조선시대 후기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리통 3간, 양통 1간으로 도리통은 어간을 협간에 비해 2배 정도로 넓게 설정했다. 양통은 1간인데, 뒤로 벽장 형식으로 덧달아내고, 이것을 감실로 삼아 벽장 형식의 불단을 만들고 탱화를 걸었다.

정면 어간에는 두 짝의 띠살 창호를 달았고, 협간에는 중방 위에 띠살의 두짝 창을 달았으며, 나머지는 모두 벽이다. 벽장을 달아낸 모습과 정면 창호의 구성으로 보아 이 건물은 언젠가 잠시 주거용으로 사용하다가 벽장의 문짝을 떼어내고 탱화를 봉안함으로서 현재의 모습이 된 것으로 보인다. 기단은 막돌을 이용한 두벌대이며, 거칠게 가공한 방형초석 위에 원주를 세웠다. 후면의 덧달아낸 부분에는 막돌초석 위에 방주를 세웠다. 보아지를 사용한 납도리집으로 가구는 5량가이다. 바닥에는 장마루를 깔았으며,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지붕은 겹처마의 팔작지붕이다

 

 관음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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