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찰

천축산 불영사

Pine Tree(소나무) 2008. 11. 12. 17:28

 

2008.  11.  09.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651년(진덕왕 5) 의상()이 창건하였다. 부근의 산세가 인도의 천축산과 비슷하므로 천축산이라 하고, 전면의 큰 못에 있는 아홉 마리 용을 주문으로 쫓아낸 후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서편에 부처의 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 그 그림자가 항상 못에 비치므로 불영사()라 불렀다고 한다. 1397년(태조 6)에 화재로 타버린 것을 소운()이 중건하였는데, 그 후 다시 소실되어 1500년(연산군 6) 양성법사()가 중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병화를 입어 모두 소실되었으나 응진전(殿)만은 피해를 면했다고 한다. 그 후 1609년(광해군 1) 진성법사()가 재건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승려들의 손으로 중수가 거듭되었다.

현재 당우로는 대웅보전 ·근락전 ·응진전 ·명부전 ·조사전 ·칠성각 ·관음전 ·영산전(殿) ·황화당() ·설선당() ·범종루 ·응향각() ·칠령각() 등이 있고, 창건 당시의 유적인 무영탑()과 돌거북 2기가 있다.  

 

 일주문

 

 

 

 불영교

 

 

 

 

 

 

 

 

 

 

 

 

 

 연못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친다 하여 불영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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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에 걸려있는 목어

 

 수조

 

대웅보전

 

 대웅보전은 절에서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중심 법당을 가리키며 지금 있는 건물은 안에 있는 탱화의 기록으로 영조 원년(1725)에 세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3칸씩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각 공포의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건물에 색을 칠한 단청 부분을 들 수 있는데 바깥쪽은 다시 칠하여 원래 모습을 잃었지만 안쪽은 그 형태가 잘 남아 있다.
천장부분을 비롯한 벽, 건물을 지탱하는 굵직한 재료들에 그림을 그린 기법들은 수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건축양식과 기법연구, 격조 높은 불교그림과 단청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조선 후기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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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돌 거북

 

불영사 대웅보전은 돌 거북 조각 한 쌍이 받치고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불영사가 있는 자리가 화산이어서 그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거북 조각 넣었다고 한다. 지금도 거북 조각 한 쌍은 목만 빠끔히 내민 채 무거운 대웅보전을 받들고 있다.

 

 삼층석탑

 

시도유형문화재 제135호

불영사 내에 서 있는 3층 석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위층 기단의 각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새겼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쌓아올렸으며, 몸돌의 각 면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을 가지런히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받침) 위로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모양의 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아담하지만 전체적으로 고른 균형을 이루고 탑으로, 기단의 조각수법과 지붕돌의 모습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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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사 영산회상도

 

보물  제1272호

영산회상도는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대개 불상의 뒷벽에 위치한다.
이 영산회상도의 석가여래는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는 우견편단의 옷을 걸쳤으며,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게 하여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앉아 있다. 석가여래 주변으로 10대보살, 사천왕상, 상단의 10대제자 등이 배열되어 있다. 주로 영산회상도에서는 8대보살이 그려지는데, 이 그림에서는 10대보살을 표현한 점과 석가불 아래의 그 보살이 유난히 큰 점이 특징이다. 석가의 옷이 붉은색이고 석가 뒤의 광배가 이중으로 붉은 테를 두른 점등은 조선 후기의 불화양식보다 약간 앞선 양식적 특징이다. 채색의 사용법이 유창하고 아름다우며 묘사법이 정밀하여 그림의 가치를 더욱 높인다.
조선 영조 9년(1733)에 그려진 이 그림은 격조있는 양식, 양호한 보존상태 등으로 18세기 초 조선불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명부전

 

 

 

 의상전

 

의상전(義湘殿)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1칸의 규모로 조선시대 후기의 건물이다. 안에는 의상 대사의 상과 진영을 비롯하여 여러 고승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의상 대사상은 응진전 후불탱 화기를 보면 1906년 ‘조사전(祖師殿)에 의상 조사상을 개분(改粉) 입채(入彩)하여 조성하였다.’는 내용이 있어 조성년대를 알 수 있다. 그 밖에 종봉(鍾峯)·원효·청허(淸虛) 및 당호가 없는 진영 등 모두 다섯 폭이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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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사 극락전

 

극락전(極樂殿)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19세기 건물이다. 안에는 금동 아미타여래좌상과 관음보살, 세지보살상 및 후불탱이 불단 위에 봉안된 것을 비롯하여 아미타여래 불화 2점, 신중탱 등이 있다. 후불탱과 아미타여래 불화 2점은 1977년, 신중탱은 1967년에 각각 조성한 것이다. 극락전 바깥쪽 처마 아래에 걸린 '극락전(極樂殿)' 편액의 글씨는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 1835~1918)이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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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사 칠성각

 

 응진전

 

보물  제730호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651) 의상이 세웠다고 하는데, 당시 이 지역 냇물 위에 다섯 부처님의 영상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거기 살던 용을 쫓아낸 뒤 절을 지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조선 태조 5년(1396) 나한전만 남긴 채 화재로 모두 불에 타 버렸고 임진왜란 때에도 영산전만 남기고 모두 불 타 버렸던 것을 훗날 다시 짓고 많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응진전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난·가섭과 16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1984년 수리 공사 때 발견한 기록으로 임진왜란 전·후에 여러 번 고쳐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원래는 영산전이었다고 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4짝 여닫이문을, 양쪽 칸에는 작은 창을 달아 놓았다.
건물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기 위해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다. 건물에 남아 있는 단청은 안쪽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 조선 중기의 문양을 살펴볼 수 있다.

 

 

 

 불영사 부도

 

문화재자료 제162호

불영사로 들어가는 입구 옆에 자리하고 있는 사리탑으로, 조선 전기의 승려인 양성당 선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양성당 선사의 이름은 혜능(惠能)으로, 11세 되던 해인 세종 7년(1425)에 출가하여 승려의 길에 들어섰다. 중종 11년(1516)에 돌아가셨는데 화장을 하고 나니 사리가 발견되어 이곳에 탑을 세우고 그 안에 사리를 모셔두었다 한다.
탑은 사각 바닥돌 위로 납작하고 둥근 기단(基壇)을 두고, 종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기단의 옆면에는 연꽃무늬를 둘러 새겨 놓았고, 탑신의 어깨부분에도 연꽃무늬로 받침을 이루게 한 뒤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을 얹어 두었다.
선사가 돌아가신 해인 조선 중종 11년(1516)에 세운 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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