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05. 18.
도선사를 나와 삼천사를 향한다. 주변에 사찰이 여러곳있어 주변을 둘러보기로 한다.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 1) 원효(元曉) 대사가 개산(開山)하였다. 1481년(조선 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며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임란 중에 소실 되었으나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 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삼천사라 하여 다시 복원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 현재의 주지 평산 성운 화상이 부임하여 경내에 위치한 마애여래입상이 천년 고불(古佛)임을 입증하여 보물로 지정받고 30여 년의 중흥 불사를 통해 대웅보전, 산령각, 천태각, 연수원, 요사채 등의 건물과 세존진신사리탑, 지장보살입상, 종형사리탑, 관음보살상, 5층 석탑, 중창비 등을 조성하여 현재의 문화재 전통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수많은 참배객들의 기도도량, 참회도량, 수행도량으로서 확고히 자리하게 되었다. 그 밖에 사찰에서 2km 위쪽에 위치한 옛 삼천사 터에는 대형 석조(石槽)와 동종(銅鐘), 연화대좌(蓮花臺座), 석탑기단석(石塔基壇石),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 대지국사(大智國師) 법경(法鏡)의 비명(碑銘)이 남아 있는데, 그 중 동종은 보물로 지정받아 현재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대웅보전
대웅보전은 가람의 중심이 되는 전당으로서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 즉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마애여래입상
마애여래입상은 삼천사 경내 대웅전의 위쪽으로 30m 지점 계곡의 병풍바위에 각인되어 있다. 불상의 어깨 좌우에 큰 사각형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애불 앞에 목조가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말 또는 고려 초기에 조성되었으며, 전체 높이는 3.02m, 불상 높이는 2.6에 달한다. 고려시대 불상 중 대표작의 하나로 평가된다.
종형사리탑
종형사리탑은 가로 3.1m, 세로 3.1m의 4각대석 위에 놓여 있다. 무진년 4월, 평산 성운 화상이 미얀마를 성지순례할 때 마하시사사나 사원에서 아판디타 대승정(大僧正)으로부터 전수받은 부처님 사리 3과를 88올림픽의 성공 기원을 담아 종 모양의 돌탑[石鐘塔] 속에 봉안하였다. 대웅보전 위쪽 계단을 오르면 마애불전 앞에 위치해 있다.
산령각
산령각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전통 건축양식인 맞배지붕으로 을해년에 개축하였다. 내부 중앙에는 산신과 호랑이를 그린 산신탱화를 봉안하였는데 산신은 산의 영(靈)으로 산을 지키며 산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장하는 신으로 산신령(山神靈)이라고도 한다. 산의 주인으로서 늘 가람의 뒤쪽에 자리하며 불법을 수호(守護)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좌우에 각각 독성탱화와 칠성탱화를 봉안하고 있는데 다른 사찰과는 달리 나무에 새긴 목각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삼각산의 산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음을 볼 수 있으며, 이런 이유에서 삼천사를 '산신이 보좌를 튼 절'로 부르기도 한다. 영험한 곳으로 소문이 나 많은 기도객의 참배가 끊이지 않고 있다.
5층석탑
삼천사 경내 일주문을 들어서기 전 초입에 위치한 5층 석탑은 무진년 4월, 평산 성운 화상이 미얀마를 성지순례할 때 마하시사사나 사원에서 아판디타 대승정(大僧正)으로부터 전수받은 나한사리를 봉안하였다.
지장보살입상
지장보살입상은 삼천사 경내 초입의 오른쪽 위쪽에 위치하여 가람을 두루 굽어보고 있다. 황동석(화강암) 통돌로 조성되었고, 팔각형상(上) 좌대에는 도명존자, 무덕귀왕, 시왕 등 10분이 새겨져 있고, 원형 하(下) 좌대에는 심우도를 배치하였으며, 높이는 6.0m이다. 계유년 칠월 백중, 평산 성운 화상의 발원으로 고려 불화를 초안으로 하면서 이 시대 불교미술의 시대성을 고려하여 7등신으로 조성되었고, 지장보살의 지혜와 자비를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