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도 사찰

마니산 정수사

Pine Tree(소나무) 2008. 9. 23. 19:56

 

2008.  09.  20.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 동쪽에 위치한 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 8년(639)에 회정선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회정선사는 마니산 참성단을 참배한 후 내려오다가 마니산의 동쪽 지형을 보고 불제자가 수행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생각하여 절을 짓고 정수사(淨修寺)라고 하였던 것을 세종 8년(1426)에 함허대사가 절을 중창할 때 법당 동편에서 맑은물이 나와 절의 이름을 정수사(淨水寺)로 고쳤다고 한다.  현재도 대웅보전의 왼쪽 샘에서는 손이 시릴 정도의 차고 맑은 물이 솟아나고 있다. 

 

 대웅전 올라가는 계단...

 

 대웅보전

대웅보전은 여느 전각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매우 특이한 구조를 지녀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본래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이었으나, 후대에 앞쪽으로 한 칸의 툇간을 내달아 정면보다 측면이 긴 구조가 되었다. 이로 인해 유심히 살펴보면, 지붕 또한 앞면이 뒷면보다 긴 짝지붕이다. 법당에 툇마루가 있는 법당은 안동 개목사 원통전과 함께 정수사 대웅보전뿐이다. 툇마루는 아담한 절 크기와 조화를 이뤄 마치 고향집에 온 정겨움이 묻어난다.

 

 

 

 

대웅전 문살

 

 사람들이 정수사에 가장 오랜 눈길을 머무는 곳이 바로 정수사 법당의 꽃창살이다. 다른 곳의 창살문과는 다르게 이곳의 꽃창살은 화병에 꽃을 꽂은 형태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화병이 있는 꽃창살일 것이다. 아래에 꽃창살 사진들은 문짝 하나를 전체로 담고 그 아래 사진은 화병 부근의 꽃창살을 찍은 사진들이다. 가운데 두 짝은 연꽃으로 보이며, 양 옆에 있는 문짝에 있는 활짝핀 모란을 화병에 꽂은 듯하다. 화병의 모양과 색깔이 제각기 다른 것도 흥미를 더한다.

 

 ‘정수사(淨水寺)’라는 이름에서 어느 정도 짐작은 했겠지만, 대웅보전 옆 돌샘의 물맛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조선 초기 다승(茶僧)으로 이름이 높았던 함허 스님이 산신각 아래 바위틈에서 솟아오르는 석간수(石間水)의 물맛에 반해 아예 절 이름을 바꿨을 정도이니, 그 맛은 이미 검증된 것으로서 예사롭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남한의 3대 명수로는 오대산 우통수, 정수사 샘물, 속리산 삼다수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차 다례를 복원·부활시킨 근세 차인(茶人) 명원 선생은 생전에 남한 제일의 샘물로 정수사 물을 품명(品茗)했다. 심지어 일본에까지 그 명성이 알려져 일본인들도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삼성각

정수사 대웅보전 왼쪽 계단을 오르면 삼성각을 볼 수 있다. 삼성각 오르는 돌계단이 운치있게 보인다. 

정수사 삼성각에는 가운데 산신을 중심으로 눈으로 보기에 오른쪽에는 용왕도가 있는데, 이는 바다와 가까운 지역적 특색인 것같다. 특히 용왕도는 그림이 아니라 나무에 용왕을 새기고 화려한 색을 칠한 것으로 상당히 특색있는 삼성각의 모습이었다. 

 

 

 

 오백나한전

 

 

 

 

 

 정수사 옆 계곡의 이름은 ‘함허동천(涵虛洞天)’인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함허 스님은 계곡 물이 바위들을 넘나들며 장관을 이루는 함허동천을 ‘사바세계의 때가 묻지 않아 수도자가 가히 삼매경에 들 수 있는 곳’이라고 극찬하였다. 함허 스님이 수도했다는 거대한 너럭바위에는 손수 새긴 ‘涵虛洞天’ 네 글자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부도

조선 초 배불(排佛)이 팽배하던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불교 수호를 위해 힘썼던 함허 스님에게, 정수사 샘물로 끓인 한 잔의 차는 다선일미(茶禪一味)를 실천케 하는 근원이 되었을 것이다. 대웅보전 오른쪽 뒷산에는 커다란 소나무 아래 함허 스님의 부도가 고즈넉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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