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도 사찰

아차산 화양사

Pine Tree(소나무) 2008. 11. 15. 11:39

 

2008.  11.  10.

 

아차산 영화사를  가는길에 화양사라는 표시판을  보고 잠시 들려본다.  도로변에 위치해있다.  대웅전과 미륵불과 부도탑이

있다.

 

 

 華陽寺(화양사)의 창건은 672년(문무왕 12)에 의상대사가 華陽寺(화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의하면 의상이 중국에서 돌아와 태백산에 부석사를 짓고 다시 전국에 화엄10찰을 지어 전교했다고 하였는데 화엄10찰에는 화양사가 들어있지 않습니다. 신라가 한강유역에 한산주를 설치한 후 이곳에 의상대사가 화엄종 사찰을 세웠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華陽寺(화양사)는 여러 차례의 移健(이건)이 있었고, 현재 남아있는 유물로서도 초창연대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습니다.

華陽寺(화양사)가 창건 이후 어떻게 변천 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는 상세한 자료는 없으며, 다만 몇 가지 단편적인 사실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본 華陽寺(화양사)는 漢陽(한양) 定都(정도) 時(시)에 무학왕사 묘엄 존자가 鎭護國家(진호국가)의 목적으로 이 산 용마봉아래(현 중곡동)에 창건한 후 後香火不絶(후향화불절)의 大 道場(대 도장)이었다 합니다.
그런데 100여 년 전에 李堈(이강) 公妃(공비)의 陵(능)이 설립될 때 이 일대가 陵寺地(능사지)로서 정하여졌기에 당시의 주지 이상오화상이 구의동으로 본사를 이건하고 사명도 永華寺(영화사)로 개칭한 뒤 김명칠, 안보광, 김석하화상 등 역대의 주지가 師資相承(사자상승)하면서 傳法度生(전법도생)의 門戶(문호)를 開張(개장)한 太古宗(태고종)의 首格寺刹(수격사찰)이었다 고합니다.
그러던 것이 근자에 불교승려분쟁이 일어나 태고종 총무원장(14세, 16세 태고종종정역임)을 역임한 안덕암화상이 주지로 부임하여 수년 동안 太古宗脉(태고종맥)을 고수하였으나, 결국 1980년에 曹溪宗(조계종)에 强占(강점)되어 본사 역대주지의 法脉傳承(법맥전승)의 도장을 상실하고 수많은 檀信(단신)들의 香火(향화)를 받던 것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를 개연히 여겨 안계월행보살과, 송영인거사, 등이 크게 분발하여 사재 전부를 기우려 화양사 재건을 도모하였습니다.
이를 본 신도들이 적극 협조하여 1980년에 본사의 연고지인 아차산기슭에 다시 寺地(사지)를 마련하여 법당 겸 요사를 신축하고 현대식시설을 갖춘 유치원까지 설립하였습니다.
1983년 덕암화상이 인도성지를 순례하고 돌아오는 길에 스리랑카에서 佛舍利(부처님사리)를 제례하여 5층 사리보탑을 조성 봉안하였고,
1985년 부처님의 원력으로 신도들이 일심으로 동참하여 16척 미륵부처님을 화강암 원석으로 조성함으로서 명실공이 한 대가람의 면모를 일신하여 갖추었습니다.

華陽寺(화양사)는 조선후기에 번창했던 것으로 믿어집니다.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한성동역도》에서 화양사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가 최성환과 함께 1851년(철종 2)에서 1856년(철종 7) 사이에 편찬한 《여도비지》에도 화양사라는 절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華陽寺(화양사)는 19세기경까지 계속 寺勢(사세)를 유지해 왔고 또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1907년에 구의동 9번지인 현 위치로 옮겨 永華寺(영화사)라고 고쳐 불려졌고 이후 1980년에 구의동 16-1번지로 이건하여 本來(본래)의 寺名(사명)인 華陽寺(화양사)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아차산  화양사..

 

 대웅전

 

 

 

 

 미륵불..

 

 

 

 

 

 덕암 대종사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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