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9, 6, 7 (일)
날씨 : 맑음
행동용궁사를 뒤로하고 태종대를 향한다.
기억속에 있는 태종대의 절벽과 바다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며 도착한 태종대는 입구가 막혀있어
차로는 오르지 못하게 되어있나 보다. 시간도 늦어 어두워지고 오르지도 못하니 태종대 옆의 바닷가에서
회 한접시에 저녁을 먹으며 아쉬움을 달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원명사로 출발한다. 원명사는 경남 김해시 대동면 초정리 208번지 백두산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의 말사이다.
원명사 입구
부산 근교 김해에‘백두산(白頭山)’이라는 심상치 않은 산이 하나 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똑같은 산명을 지닌 이 산은
김해 대동에 위치해 있는데 의외로 산이 야트막해 워킹산행지로 전문산악인들에게만 잘 알려진 곳이라고 한다.
백두산이라는 이름의 연원에 대해서는 대체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백두대간의 마지막 지점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의해 북한 백두산에서 정남(正南)으로 곧바로 내려와 떨어지는 마지막 산이 자리한 지점이라고도 한다.
이유야 어찌됐든 북한의 그것과 대조적으로 고작 362m의 낮은 이 산에도 불심의 터가 자리하고 있다.
가야의 옛 터인 김해시 원명사(圓明寺)는 오래 전 가락국 시절부터 사찰이 존재해 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어느 때인가 요사 뒤편에서 1392년 제작된 등복사(登福寺)라는 기와 와편이 출토돼 최소한 이 곳(옛날에는 이곳을 등복골이라 불렀음)에
사찰이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창건연대를 더욱 소급해 올라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
이러한 유서를 가진 원명사의 역사는 최근의 역사만 전해져 올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80여전 원명스님의 재창건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불맥을 이어오고 있는 원명사는 오로지 지장기도만을 일심으로 행하고 있는 곳이다. 이는 원명사가 제2의 창건을 할 때부터 사찰 고유의
전통적인 기도형태를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지장기도 외에 관음기도, 약사기도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를 알려주듯 원명사는 대웅전 외에도 지장전과 지장보살상이 몇 곳에 외불상 형태로 모셔져 있다. 원명사에 모셔진 지장보살 중 1997년
모셔진 자모지장보살상은 국난마다 눈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이적을 보여 인근에 입소문이 자자하다.
원명사는 비교적 넓은 터에 잔디를 깔고 가람을 반듯하게 구조해 놓고 있어 마치 신흥사찰처럼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원명사는 가락국의 옛 사찰로서의 역사를 묻어둔 채 김해 제일 지장기도도량으로 새 역사를 다시 써나가고 있을 뿐이다.
원각범종각과 사물
원명사 입구에 있는 종각은 1995년 구 종각을 허물고 새로이 지어졌으며 팔작지붕에 주심포 익공계 공포로 되어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조성돼 있다. ‘원각범종각(圓覺梵鐘閣)’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 이 종각에는 1987년 조성한 범종을 비롯해
운판, 목어, 법고 등이 자리해 있다.
지장보살 입상
사찰 입구를 내려다 보고 있는 약 3m 높이의 지장보살입상을 사찰에서는 자모지장보살이라 부르는데
기단석에는 금강역사상이 8각에 걸쳐 새겨져 있고, 한 속에는 석장을 들고 한 손에는 마니주가 들려져 있다.
이 지장보살은 1997년 IMF가 닥치기 전에 모셨는데 이후 IMF를 비롯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양쪽 눈에서 이름 모를
액체가 흘러내리는 이적을 보여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고 한다.
대웅전
1992년 건립한 원명사 대웅전은 팔작지붕에 정면 5칸 측면 4칸의 규모이다. 다포식 공포로 지어진 대웅전에는
중국 송나라 고승 야부도천(冶父道川)의 선시가 주련으로 걸려 있으며 심우도가 외벽화로 그려져 있다.
대웅전의 기단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전면에 화단이 잘 꾸며져 있다.
내부에도 현란한 단청과 내벽화, 포벽의 나한상, 여려 겹의 내부 공포로 꾸며 놓아 화려한 분위기와 불당의 장엄함을 자아내고 있다.
내부에는 팔상성도와 코끼리상으로 화려하게 목각되어 있는 수미단 위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마다 본존으로 석가여래삼존불,
좌측에는 약사여래삼존불, 우측에는 아미타여래삼존불이 모두 목불의 형태로 각각의 닫집 아래에 나란히 배열되어 있으며
또한 각각의 후불탱화도 함께 봉안돼 있다. 다시 말하자면 각 삼존불을 두고 각각의 협시로‘6광여래’를 모셔놓은 것이다.
삼존불과 후불탱은 모두 1992년 조성됐으며 후불탱은 자성 만봉(慈性 萬奉)스님의 작이다.
가운데 삼존불은 주불인 석가여래를 위시해 좌우에 문수/보현보살상이 입상으로 조성돼 있으며,
좌측에는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월광/일광보살상이 역시 입상으로 모셔져 있고,
우측에는 아미타여래 좌우에 관음/대세지보살상이 입상으로 안치되어 있다.
각 협시불 앞에는 모두 6개의 여의주가 있다. 또 석가여래삼존불은 영산회상도, 약사여래삼존불은 약사여래후불탱화,
아미타여래삼존불은 아미타여래후불탱화를 각각 후면에 봉안해 놓았다.
이 외에 1992년 수준 기태(壽俊 崎泰)가 그린 지장탱을 좌측에 봉안했으며
1997년 이수준(李壽俊) 금어가 그린 신중탱을 우측에 봉안해 놓았으며 동종 대신 금고가 한 켠에 자리해 있다.
또 신중탱 옆에는 지장보살좌상이 원불로 399기 봉안돼 있으며 지장탱 옆에는 지장보살입상이 220기가 역시 원불로 봉안돼 있다.
대웅전 주련
山堂靜夜坐無言:고요한 밤 산 속의 집에 말없이 앉았으니
寂寂寥寥本自然:적막하기 짝이 없어 본래 그대로인데
何事西風動林野:무슨 일로 저 바람은 잠든 숲을 흔드나
一聲寒雁戾長天:기러기 소리내며 장천을 날아가네
夜靜水寒魚不食:고요한 밤 물이 차가와 고기 물지 않는다
滿船空載月明歸:배에 가득 허공 싣고 달빛 속에 돌아간다
대웅전의 불상
중앙의 삼존불 석가여래 ,문수/보현보살
좌측의 약사여래, 일광/월광보살
우측의 아미타여래, 좌우에 관음/대세지보살
신중탱
지장탱
설법전
요사로 쓰이고 있는 설법전(說法殿)은 1990년 지어졌으며 경봉스님이 쓴 편액이 걸려있고 다음과 같은 주련이 걸려 있다.
설법전 주련
一念忘時明了了:한 생각 없어져서 밝고 밝으면
彌陀不在別家鄕:아미타불이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로다.
通身坐臥蓮華國:온 몸이 앉고 눕는 것이 연화국이니
處處無非極樂堂:곳곳이 극락당 아님이 없도다.
요사
요사
부도전
원명사 초입에 있는 비석군에는 원명스님과 상좌인 영봉스님의 행장이 기록되어 있는 공덕비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밖에 사찰의 발전에 큰 도움을 준 불자들의 부도 4기가 안장되어 있다. 사찰의 입구에는 사적비가 따로 자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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